[소개글]
우리역사 바로알기
한박-李時明
마고와 부도
신라시대 박제상(朴堤上)이 쓴『부도지(符都誌)』는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사서(史書)이다.
또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뜻 깊은 창세(創世) 기록이기도 하다.
『부도지』에 의하면 천지창조의 주인공은 율려(律呂)이다.
율려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들이 나타났고, 우주의 어머니인 마고(麻姑)를 잉태했다.
마고는 홀로 선천(先天)을 남자로 하고 후천(後天)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가 없이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고, 궁희와 소희도 역시 선천과 후천의 정을 받아 결혼하지 아니하고
네 천인(天人)과 네 천녀(天女)를 낳았다.
율려가 다시 부활하여 지상에 육지와 바다가 생겼다. 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서로 섞여
조화를 이루더니 풀과 나무, 새와 짐승들이 태어났다. 마고는 율려를 타고 지구를 삶의 터전으로
만들었으며, 천인과 천녀들은 하늘의 본음(本音)으로 만물을 다스렸다.
네 천인과 네 천녀는 마고의 뜻에 따라 서로 결혼하여 각각 3남 3녀를 낳았다.
그리고 그들이 또 서로 결혼하여 몇 대를 지나는 사이 1만 2천명의 무리가 되었다.
그들은 지구상의 가장 높은 곳에 '마고성(麻姑城)'이라는 이상적인 공동체(符都)를 이루고 살았다.
그들은 품성이 조화롭고 깨끗하며, 땅에서 나오는 지유(地乳)를 먹고살아 혈기가 맑았다.
그들의 귀에는 오금(烏金)이 있어 하늘의 소리를 듣고 율려를 체득하여 자신이 바로 우주와 하나임을
깨달았다. 우주의 원리인 율려에 의존하여 살았기 때문에 유한한 육체의 한계를 넘어 무한한 수명을
누렸다. 그들은 만물에 깃들인 마음의 본체를 읽는 지혜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마음의 본체를
운용하여 소리를 내지 않고도 말을 했고, 마음먹은 곳은 어디든지 갔으며, 형상이 없이도 행동할 수
있었다.
그들 중에 지소씨(支巢氏)라는 사람이 어느 날 지유(地乳)를 마시려고 유천(乳泉)에 갔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 마시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배가 고파 어지러워서 쓰러졌다.
지소씨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소(巢)의 난간의 넝쿨에 달린 포도열매를 허겁지겁 따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가 윙윙거리고 혀가 아려오고 온 몸의 피부가 가렵고
코가 맹맹해졌다. 어쩔 줄을 몰라하던 지소씨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지소씨는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전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온 세상이 색색으로 물들어 있고, 꽃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귀에는 물 흐르는 소리와 새의 노래가 들려왔다. 지소씨는 "넓고도 크구나 천지여!
하지만 내 기운을 능가하지는 못하는구나. 이 모두가 포도의 힘이로다."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포도를 권했고, 포도의 다섯 가지 맛을 알게 된 사람들은
번잡하고 사사로운 욕망과 감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미(五味)의 변(變)이다.
마고성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사람들이 포도를 먹지 못하도록 금지하기에 이른다. 마음의 본체,
즉 본성이 하고자 하는 대로 살던 마고성의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인위적인 금지법이 생긴 것이다.
아무런 구속과 강제 없이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던 자재율(自在律)이 파괴된 것이다.
결국 포도를 먹은 이들뿐 아니라 포도를 먹지 못하도록 지키는 이들도 율려에 의존하여
살 수 없게 되었다. 포도를 먹은 이들은 몸이 이상하게 변했다.
또한 포도를 먹은 것을 창피하게 생각해 거짓말을 하고, 점차 남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어두워져서 마침내 천성(天性)을 잃어갔다.
오금(烏金)은 흙으로 변해 더 이상 하늘의 음을 들을 수 없었으며, 마음의 본체를 볼 수도
운용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유한한 육체의 한계 속에 갇혀 육체의 감각인 오감에만 의존해서
살아야 했다.
여러 사람들이 지소씨를 원망하자 그는 부끄러운 나머지 사람들을 이끌고 마고성에서 나가
숨어버렸다. 천성을 잃은 다른 사람들도 이곳 저곳으로 흩어졌다.
마고성의 제일 어른이었던 황궁씨(黃穹氏)는 떠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간곡하게 말했다.
"그대들의 마음이 심하게 흐려져 마음의 본체가 변하니 어쩔 수 없구려. 그러나 스스로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마음이 다시 맑아지면 자연히 천성을 되찾게 될 것이니
노력하고 또 노력하시오."
그러나 성밖은 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서로 부딪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만물은 서로를 시기하고, 불신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다퉈 성밖의 세상은 점점 혼란스러워졌고, 나중에는 마고성까지 위험하게
되었다. 이에 황궁씨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었으므로 마고의 앞에 사죄하여
오미(五味)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복본할 것을 서약하였다.
제족들과 의논한 결과 마고성을 완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마침내 성문을 닫고 모두가 성을 떠나
이주할 것을 결심한다. 황궁씨는 마고성에 살던 네 무리 중 한 무리의 3천 명을 이끌고
가장 춥고 위험한 북쪽의 천산주(天山洲)로 향했다. 다른 세 무리도 각각 동, 서, 남쪽으로 향했다.
황궁씨는 천산주에 도착하여 해혹하여 복본(複本)할 것을 서약했다. 또한 사람들에게 수
증(修證)하는 일을 열심히 하도록 일렀다.
큰아들인 유인씨(有因氏)에게는, 하늘의 징표인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주어 세상을 밝히게 하고,
둘째와 셋째 아들에게는 천산주 일대를 순행(巡行)하도록 하였다.
아들에게 후일을 도모하도록 한 뒤, 황궁씨는 스스로 천산(天山)으로 들어가, 긴 소리를 토하는
돌이 되었다. 돌을 통해 율려의 음을 울려 오감과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려서
그들이 율려를 회복하는 일을 도왔다.
큰아들 유인(有因)씨는 황궁씨에게 물려받은 천부삼인으로 사람들에게 만물의 근본이 하나임을
깨닫게 하였다. 또한 불을 일으켜 어둠을 밝게 비추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음식을 익히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후일 유인씨는 아들 한인(桓因)에게 천부를 정하고 산으로 들어간다. 한인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밝히고, 햇빛을 고르게 비추고, 기후를 순조롭게 만들었다. 마침내 만물이
평정을 되찾고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차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이는 황궁, 유인, 한인
3대에 걸쳐 3천년 동안이나 수증을 한 정성 덕분이었다.
부도지 이야기는 성경의 에덴동산과 그 내용이 흡사하지만 훨씬 깊고 넓다.
성경에서 말씀의 주체는 창조주 하느님이다. 말씀이란 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듣고 따르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부도지에서 율려의 주체는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율려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우리 안에 내재한 신성(神性)을 밝혀 우주의 율려와 하나가 되는 과정을 <부도지>에서는
'수증(修證)'이라 했다. 수증은 곧 모든 생명과 아우르는 천지마음, 천지기운과 하나되는 과정이다.
우리 민족은 잃어버린 율려를 회복해 이상적인 공동체를 다시 세우고자 '복본(複本)'을 맹세했던
민족이다. 복본을 위해서 천부경이 나왔고,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을 통해서
인간을 신인합일의 경지로, 우아일체(宇我一體)의 경지로 복본시키는 역사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우리 민족만의 약속이 아니다. 율려의 회복은 온 인류의 꿈이다.
삼성기 전 상편
우리 환(桓)의 건국은 세상에서 가장 오랜 옛날이었는데,한 신(神)이 있어 사백력(斯白力)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한 신이 되시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 큰 교화는 만물을 낳았다. 오래오래 살면서 늘 쾌락을 즐겼으니, 지극한 기를 타고 노닐고 그 묘함은 저절로 기꺼웠다. 형체가 없이도 볼 수 있고, 하는 것이 없으면서 모두 이루고 말 없으면서 다 행하였다.
어느 날인가 동녀동남 800이 흑수(黑水)와 백산(白山)의 땅에 내려왔는데, 이에 환인(桓因)은 무리를 이끌며 천계에 계시면서 돌을 쳐 불을 일으켜서 날음식을 익혀 먹는 방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셨다. 이를 환국(桓國)이라 하고 그를 가리켜 천제환인씨(天帝桓因氏)이라고 불렀다. 또한 안파견(安巴堅)이라고도 했다. 일곱대를 이어 전했는데 그 연대는 알 수가 없다.
뒤에 환웅씨(桓雄氏)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의 뜻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에 내려왔다. 천평(天坪)에 내려와 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을 파고 청구(靑邱)에 정지를 나누었다. 천부인(天符印)를 지니시고, 다섯 가지 일을 주관하시며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를 베푸시니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였다. 또 신시(神市)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倍達)이라 불렀다.
3,7일을 택하여 천신께 제사지내고 밖의 물건을 꺼리고 근신하며, 문을 걸어 잠그사 스스로 주문을 외우며 몸을 닦아 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였다. 약을 드시고 신선이 되시니, 괘(卦)를 지어 미래를 알며 상(象)을 잡아 신(神)을 움직였다. 또 여러 영험스러운 이들과 밝은 자들에게 보필하도록 하시더니 웅씨(熊氏)의 여인을 거두어 아내로 삼으시고 혼인의 예법을 정하고, 짐승 가죽으로써 폐물을 삼았다.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고 시장을 열어 교환하도록 하니, 온 세상이 조공을 바치며 새와 짐승도 덩달아 춤추었다. 뒷날 사람들은 그를 지상 최고의 신이라고 받들어 세세토록 제사가 끊임이 없었다.
18세를 전하여 1565년을 누리었다. 그는 신의 덕과 성인의 어짐을 겸하여 갖추었으니, 이에 능히 조칙을 받들어 하늘의 뜻을 이루었으니 나라를 세운 뜻과 법은 높고 넓고 강하고 열렬하였다. 이에 구환(九桓)의 백성들이 마음 깊이 복종하여 그를 받들어 천제의 화신이라 하며 그를 제왕으로 모셨다.
그가 곧 단군왕검(檀君王儉)으로 신시로부터 전해지던 오랜 법을 되찾고 서울을 아사달(阿斯達)에 설치하여 나라를 열었으니 조선(朝鮮)이라고 불렀다. 여러 사람들을 두루 교화하였다.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였고. 성조(成造)에게는 궁실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高矢)에게는 농사를 장려하도록 맡기셨고, 신지(臣智)에게 명하여 글자를 만들게 하였으며, 기성(奇省)에게는 의약을 베풀게 하고, 나을(那乙)에게는 호적을 관리하도록 하였으며, 희(羲)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케 하고, 우(尤)에게는 군대를 관장하게 하였다. 비서갑(菲西岬)의 하백(河伯)의 딸을 거두어 아내로 삼고 누에치기를 장려케 하니 순방의 다스림이 온 세상에 두루미쳐 태평치세를 이루었다.
병진(BC,425)년, 주나라 고임금(BC,440-425)때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라고 바꾸고 백악(白岳)으로부터 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 이에 팔조를 법으로 하고 글 읽고 활 쏘는 것을 일과로 하며 하늘에 제사지냄을 종교로 하고 누에기르기에 힘쓰도록 하였다. 어딜 가나 금지하는 바가 없었고 죄를 처자에게까지 미치지 않게 하며 백성과 의논하여 힘을 합쳐서 나라를 다스렸다. 사내에게는 언제나 직업이 있었고 여자에게는 좋은 짝이 있었으며 집집마다 재물이 쌓였다. 산엔 도적이 없고 들엔 굶주린 자가 없으며 거문고 노랫소리가 온 누리에 가득하였다.
임술(BC,239)년 진나라 시황(BC,246-206)때 신인이신, 대해모수(大解慕漱)께서 웅심산(熊心山)에서 일어났다.
한 구석에 스며들었는데 번한(番韓)의 준(準)이 이를 맞아 싸웠으나 이길 수 없자, 바다길을 택해서 멀리 망명했다. 이로부터 삼한의 무리는 거의 한수의 남쪽으로 옮겨갔으나, 한때에는 여러 영웅들이 요해의 동쪽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계유(BC,108)년 한나라의 무제때에 한나라는 군대를 움직여 우거(右渠)를 멸망시켰다. 서압록 사람인 고두막한(高豆莫汗)이 의병을 일으켜, 역시 단군(檀君)이라고 했다.
나라 이름을 부르니, 이것이 곧 신라(新羅)의 옛 땅이다.
단군의 옛법을 되찾고 해모수를 제사하여 태조로 삼고, 처음으로 연호를 정하여 다물(多勿)이라 하니 바로 고구려(高句麗)의 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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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기 전 하편
-원동중 지음.
처음 아만(阿曼)과 처음 만난 곳은 아이사타라고 하는데, 꿈에 천신의 가르침을 받아서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구환의 무리는 모두가 그의 후손이다. 도를 얻으시어 오래 오래 사셨으니 몸에는 병도 없었다. 하늘을 대신해서 널리 교화하시니 사람들로 하여금 군대를 동원하여 싸울 일도 없게 하였으며, 누구나 힘껏 일하여 주리고 추위에 떠는 일이 없게 되었다. 다음에 혁서환인, 고시리환인 주우양환인, 석제임환인, 구을리환인에 전하고 지위리환인에 이르더라. 환인은 혹은 단인(檀仁)이라고 말한다.
옛글에 말한다. 파나류의 나라라고도 하는데 그 땅이 넓어 남북이 5만리요 동서가 2만리이니 통틀어 말하면 환국(桓國)이요, 갈라서 말하면,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혹은 필나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혹은 白多國), 사납아국, 선비국(혹은 국 통고사국) 수밀이국이니 합해서 12국이다. 천해는 지금의 북해라 한다. 7세에 전하여 역년 3301년, 혹은 63182년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모두 가히 홍익인간(弘益人間) 할 곳이로다' 하시며 누구를 시킬 것인가 물으시니 오가(五加)가 모두 대답하기를 '서자 환웅(桓雄)이 있어, 용맹함과 어진 지혜를 함께 갖추었으며 일찌기 홍익인간의 이념으로써 세상을 바꿀 뜻이 있었사오니, 그를 태백산에 보내시어 이를 다스리게 함이 좋겠습니다' 하니, 마침내 천부인(天符印) 세개를 내려주시고 이에 말씀을 내려 '사람과 물건의 할 바가 이미 다 이루어졌도다. 그대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무리 3000을 이끌고 가 하늘의 뜻을 열고 가르침을 세워 세상에 있으면서 잘 다스려서 만세의 자손들에게 큰 모범이 될지어다' 라고 하셨다.
이때에 반고(盤固)라는 자가 있어 괴상한 술법일 즐기며 길을 나누어 살기를 청하매, 이를 허락하였다. 마침내 재물과 보물을 꾸리고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의 신장들을 이끌고 공공(共工), 유소(有巢), 유묘(有苗), 유수(有燧)와 함께 삼위산의 납림동굴(拉林洞窟)에 이르러 군주가 되니 이를 일러 제견(諸 )이라하고, 그를 반고가한(盤固可汗)이라 했다. 이에 환웅이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神檀樹) 밑에 내려오시니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데리고 곡식을 주관하고 생명을 주관하고 형벌을 주관하며, 무릇 인간의 360여가지 일을 모두 주관하여 세상을 교화하였으니 널리 인간 세상에 유익함이 있었다. 때에 곰족(熊族)과 범족(虎族)이 이웃하여 살더니, 일찌기 신단수에서 빌었다. '원컨대 신계(神戒)의 한 무리가 되고 싶습니다'하니, 환웅이 이를 듣고 말하기를 '가르쳐 줄지어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주술로써 몸을 바꾸고 정신을 바꾸었다. 먼저 신이 만들어 놓은 영혼을 고요하게 하는 것을 내 놓았으니 즉 쑥 한다발과 마늘 스무개라, 이에 경계하여 가로대 '너희들 이를 먹고 햇빛을 백일 동안 보지 않으면 쉽사리 인간다움을 얻으리라.'하니 곰족과 호족 두 무리가 모두 이를 얻어먹고 삼칠일동안 조심 하였는데, 곰족은 기한을 자 지켜서 타이름을 따르매 모습을 얻게 되었지만, 범족은 게으르고 참을성이 없어서, 금지하는바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니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는 이들의 두 성질이 서로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웅녀는 더불어 혼인할 곳이 없었으므로 박달나무밑 무성한 숲 밑에서 잉태하기를 간곡히 원하었다. 그래서 임시로 변화하여 환(桓)이 되고 그와 더불어 혼인하니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호적에 실리게 되었다.
환웅천왕이 처음으로 몸소 하늘에 제사지내고, 백성을 낳아 교화를 베풀고 천경(天經)과 신고(神誥)를 가르치시니 무리들이 잘 따르게 되었다. 이로부터 후에 치우천왕(治尤天王)이 땅을 개간하고 구리와 쇠를 캐내서 군대를 조련하고 산업을 일으켰다. 때에 구환(九桓)은 모두 삼신을 모두 한 뿌리의 조상으로 삼고 소도(蘇塗)를 관리하고 관경을 관리하며 벌을 다스리는 것 등을 모두 다른 무리와 더불어 의논하고 하나로 뭉쳐 화백(和白)을 이루니 지혜와 삶을 나란히 닦으면서 온전함을 이루었다. 이 때부터 구환은 모조리 삼한(三韓)에 통솔되고 나라안의 천제의 아들은 단군(檀君)이라고 불렀다.
<<밀기 >>에서 말한다. '환국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족이 있어서 걱정거리였다. 환웅은 마침내 삼신(三神)으로써 가르침을 만들고 전계를 베풀어 무리를 모아 서약을 시켜 선악을 상주고 벌하는 법을 갖게 하였다. 이 때부터 슬그머니 토벌하여 벌할 뜻을 품었다. 범무리였으며 새로 살기 시작한 것은 곰무리였다. 범무리의 성질은 잔인한 것을 즐기며 탐욕이 많아서 오로지 약탈을 일삼았고 곰무리의 성질은 어리석으며 또 자만에 쌓여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비록 같은 굴에 산지는 오래 들었다 하더라도 날로 멀어지기만 해서 일찌기 서로 도울줄도 몰랐고 혼인도 터놓고 한적이 없었다. 일마다 서로 따르지 않았고 모두가 하나같이 그 길을 같이 한 적이 없었다. 이에 이르러 곰무리의 여추장은 환웅이 신과 같은 덕이 있다함을 듣고, 무리를 이끌고 찾아가 뵙고 말한다.
'원컨대 한 굴에서 함께 사는 저희들을 위하여 굴 하나를 내려주시고 신계의 무리로 받아 주옵소서' 하니, 환웅이 이를 허락하시고 저들을 받아들여 아들을 낳고 산업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범무리는 끝내 그 성질을 고치지 못하므로 이를 사해로 내쫓았다. 환(桓)족의 일어남이 이렇게 하여 시작되었다. 뒤에, 갈고환웅이 나셔서 염제신농(炎帝神農)의 나라와 땅의 경계를 정했다. 또 몇대를 지나서 자오지환웅이 나셨는데, 귀신같은 용맹이 뛰어났으니, 동두철액을 하고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듯 온누리를 다스릴 수 있었고, 광석을 캐고 철을 주조하여 병기를 만드니, 천하가 모두 크게 그를 두려워하였다. 세상에서는 그를 치우천왕이라고 불렀으니, 치우란 속된 말로 우뢰와 비가 크게 와서 산과 강을 바꾼다는 뜻을 가진다.
치우천왕께서 염제신농의 나라가 쇠함을 보고 마침내 큰 뜻을 세워 여러차례 천병을 서쪽으로 일으켰다. 또 색도(索度)로부터 병사를 진격시켜 회대(淮垈)사이에 웅거하였다. 황제헌원(黃帝軒轅)이 일어나자 즉시 탁록( 鹿)의 벌판으로 나아가서, 황제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고, 뒤에 오(吳)장군을 보내 서쪽으로 고신(高辛)을 쳐 공을 세우게 하였다. 한 때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 서로 대치하고 있었으니, 탁록의 북쪽에 대요(大撓)가 있었고 동쪽엔 창힐(倉 )이 있었으며 서쪽엔 황제헌원이 있었다. 이들은 서로 군대를 가지고 승리를 차지해보려고 했으나 아무도 이루지 못하였다. 처음 황제헌원은 치우보다 일어남이 조금 늦더니 싸움마다 이로움이 없자, 대요에 의존하려고 했으나 이룰수 없었고 또 창힐에 의존코자 했으나 그것도 뜻대로 안되었으니 이는 두 나라가 모두 치우의 무리였기 때문이다. 대요는 일찌기 간지의 술을 배웠고 창힐은 부도(附圖)의 글을 배웠다. 당시의 제후들이 신하로서 섬기지 않는 자가 없음이 이 때문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말하기를, '제후가 모두 다 와서 복종하여 따랐기 때문에 치우가 지극히 휭포하였으나, 천하에 능히 이를 벌할 자 없을 때 헌원이 섭정했다. 치우의 형제가 81인 이었는데, 모두 몸은 짐승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하며, 구리로 된 이마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지고 오구장 도극 태노를 만드니 그 위세가 천하에 떨쳐졌다.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 라고 했다.
신시역대기
1세를 환웅천왕이라 하며 또 거발환(居發桓)이라 하니, 재위 94년에 120세까지 사셨다. 재위 109년에 151세까지 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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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빛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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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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