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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수 그리스도는 현명한가?

원시인62 2010. 4. 13. 12:40
▣ 예수 그리스도는 현명한가?

    다음은 런던 타임스에서 "5백년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한 인물"이라고 극찬을 받았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이 그의 저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한 말이다.

     

    " 그리스도가 그리 현명하다고 할 수 없는 일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는 자기의 재림이 당시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죽기 전에 영광의 구름 속에서 반드시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증거할 만한 성경의 구절은 아주 많습니다. 예를 들면 그는 말하기를 "이 동네에서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人子)가 오리라(마태 10:23)"고 하였고 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가 9:1)"고 하였습니다.[注1] 이 밖에도 그리스도가 자기의 재림이 그때 생존하던 많은 사람이 죽기 전에 있으리라는 걸 믿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 아주 많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초기의 제자들의 믿음이었으며, 그의 도덕적 교훈의 기본이었습니다. 그가 "내일을 위해서 염려하지 말라"라든지, 이와 비슷한 말을 한 것은 그의 재림이 곧 있을 것과 모든 세속의 일들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데에 더 큰 원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 제가 생각하기에 정말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원한 형벌을 옳게 보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서에 서술되어 있는 그리스도는 확실히 영원한 형벌을 믿었으며, 그의 설교를 듣고자 하지 않는 자에게는 여러 번 보복적인 분노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설교자에게는 흔히 있는 태도이기는 하나, 지존(至尊)의 성품을 어딘지 손상시키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에게서는 이러한 태도를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자에게도 매우 온화하고 정중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하는 것이 격분하기보다는 훨씬 성자다운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복음서에서 그리스도가 "너희들 뱀의 무리여, 독사의 세대여, 어찌 지옥의 저주를 면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말한 것을 여러분은 알 것입니다. 이 말은 자기의 설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한 말인데, 제 생각으로는 최선의 말씨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지옥에 관한 이와 같은 말은 이외에도 많습니다.

     

    그리스도는 말하기를 "人子는 그의 천사를 보내어 그의 왕국에서 거역하는 자와 부정을 범하는 자를 거두어 이글거리는 불가마에 넣으리니 거기서 통곡하고 이(齒)를 갈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계속해서 이를 갈고 통곡하는 광경을 말합니다. 이것은 여러 절에 걸쳐 나옵니다. 이것을 읽는 사람이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통곡과 분노를 머리에 그리면서 어떤 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처럼 자주 나올 수는 없습니다. 다음에는 양과 산양을 두고 한 말을 모두 기억하실 줄로 압니다. 재림할 때에 양과 산양을 분간하기 위하여 어떻게 산양에게 말하려고 했는가 들어 봅시다. "너희 저주받을 자여, 내게서 떠나 영원의 불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였고, "이 들을 영원의 불 속에 넣어라"고도 하였으며, "만약 너의 한 손이 거역하면 그 손을 끊을지니 병신이 되어 생명으로 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으로 가기보다, 영원히 꺼질 수 없는 불 속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나으리라. 거기에는 구더기가 언제나 끓고 불이 꺼지지 않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말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합니다. 이 전체 교의(敎義), 즉 지옥의 불이 죄에 대한 형벌이라고 하는 이 교의를 저는 잔인한 교의라고 보고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이 세계에 잔인성을 퍼뜨린 교의이며, 여러 세대에 가해지는 잔인한 고문을 이 세상에 남겼습니다. 그리스도의 기록자들이 쓴 대로 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면, 복음서의 그리스도는 이 점에 대해 확실히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만큼은 중요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가다렌 지방의 돼지떼의 경우를 보면 비정스럽게도 귀신들을 이 돼지떼 속에 들어가게 하여 모든 돼지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 속으로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전지전능함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기에 그는 악마로 하여금 그냥 지나가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악마를 돼지들 속에 들여 보냈습니다.

     

    다음에는 무화과나무의 기묘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리스도께서 배고픔을 느끼시자 멀리 잎사귀가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먹을 것이 있을까 하여 그리로 갔으나 이에 이르자 아직 무화과 나무가 열매 맺을 때가 되지 않아 잎사귀밖에 아무 것도 없음을 아시게 되었더라." 그리스도가 이에 "누구도 네 열매를 영원히 먹지 않으리라" 말씀하시니, 베드로가 그리스도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주께서 저주하신 저 무화과나무를 보소서, 시들어 버렸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아주 기묘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무화과 나무가 열매 맺을 만큼 자라지 않았다고 그 나무를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로서는 그리스도가 지혜에 있어서나 덕(德)에 있어서나 역사상에 나타난 어떤 다른 사람보다 높다고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는 석가나 소크라테스를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의 위에 놓아야 한다고 봅니다." [ Bertrand Russell, <Why I am not a Christian> 중에서 ]

     

▣ 예수는 메시아인가?

    기독교인들은 구약을 인용해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해 놓은 신약을 보고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는다. 그러나 구약을 쓰고, 편집하고, 대대로 지켜 내려와서 이 세상 어느 민족보다 더 잘 이해할 유대인들은 예수가 결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가 아니라고 한다.

     

    세계적인 석학 토인비는 이런 말을 했다.

     

    "기독교인들이 율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살펴본 적이 있는 유대인이라면,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의 예언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무모하게 구약의 명백한 원뜻을 변형시켰는가 하는 것을 알고 놀라움과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 토인비·어반 공저, 최혁순 譯 <미래에의 좌표> p13, 삼중당 ]

     

    마태복음 기자가 이사야서 7장 14절의 내용을 원용해 쓴 것으로 유명한 마태오 복음 1장 22~23절을 보자.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이 말은 불행히도 히브리어판 이사야서 7장 14절에는 '처녀'라는 단어가 아니라 '알마아'(alma)로 되어 있으며 '알마아'는 처녀가 아니라 '젊은 여자'를 가르키는 말이다. '처녀'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베툴라아'이다. 다른 희랍어 번역본들(아퀼라, 심마커스, 데오도숀 역본)은 모두 희랍어로 '네아니스'(히브리어의 '알마아'에 해당)라고 되어 있고 오직 셉츄아진트만이 '파르테노스'(히브리어의 '베툴라아'에 해당)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사야서의 '알마아'는 성교를 경험하지 않은 예수의 엄마가 아니라 아하스왕이 새로이 맞이한 젊은 왕후로 보아야 마땅하다. [ 류형기 편역 <성서주해> Ⅱ 423~424,  한국기독교문화원,  1971 ]

     

    헤롯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다 죽였을 때 마태는 그 사건이 구약에서 예언된 것이라고 했다.

     

    + '라마에서 들려오는 소리, 울부짖고 애통하는 소리, 자식잃고 우는 라헬, 위로마저 마다하는구나!'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마태 2:18)

    그러나 인용되었다는 곳을 구약에서 찾아보면 그 사건과는 전혀 관계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울음을 그치고 눈물을 거두어라, 애태운 보람이 있어 자식들이 적국에서 돌아오리라.(예레미아 31:16)

     

    그리고 다음의 말씀을 보자.

    + 그러다가 그는 다시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레아 지방으로 가서 나자렛이라는 동네에서 살았다. 이리하여 예언자를 시켜 '그를 나자렛 사람이라 부르리라.'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마태 2:22~23]

     

    구약에 메시아가 나자렛이란 동네에서 살 것이라고 예언한 부분은 눈을 씻고 찾아봐야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나자렛'이란 단어조차 없다. 그래서 신약에 보면, 다른 예언은 어디서 인용했다고 조그만 글씨로 주(註)를 달아 놓았지만(물론 대부분은 엉터리임), 이 곳에는 구약 어디에서 인용했다는 표시조차 없다.

     

    이 외에도 기독교인들이 예수가 구약에서 예언되었다고 하면서 인용하고 해석하는 것들이 수십, 수백 개가 되지만, 알고 보면 대부분 터무니없는 억지이다. [ 하원 <한쪽 뺨맞고 성질내신 예수님> 중에서 ]


예수는 실존 인물인가? 신화 속의 인물인가?

     

    예수는 동시대인들이나 당대의 역사가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거나 아니면 언급할 가치가 없는 인물로 평가된 것 같다. 현재 빌라도나 헤롯등 당대의 걸출한 인물들의 생애와 관련된 자료들은 복수적 자료에 기록되어 예수에 비해 풍부히 남아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동시대 역사 학자들의 저서에 예수의 이름이 기록된 문서는 없다. 방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역사적 실체를 입증 할 만한 그 어떠한 고고학적 유물이나 문서가 발굴된 적이 없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4복음서를 증거물로 제시할 것이다. 물론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이 예수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4 복음서가 예수의 가르침을 포함하고는 있으나, 역사적 행적에 대한 기록물로 보기에는 많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최근의 방대한 연구 실적들은 크게 (1)예수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신화설) 주장하는 류와 (2) 예수의 실체는 인정하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예수와는 상치된 예수를 재구성해 내는 류로(재구성파) 구분 할 수 있다. 재구성파 안에서도 의견은 분분하여, 여러 모습의 예수를 그려내고 있다. 성경 구절이 진짜로 예수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실제로 기적이 일어났는지를, 학회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 발표하여 물의(?)를 빚는 예수학회(Jesus Seminar)가 이 재구성파의 대표 격이다.

     

    어쩌면 "신성 모독"이 될 수도 있는 학설들이 자유로이 제시되고 있다. 이들을 우리가 무시 할 수만 없는 것은 이들이 양심적인 학자들이며, 왜곡된 기복 신앙과 무지한 성경 지식에서 기인하는 맹목적인 믿음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부작용에, 최소한도 예수의 가르침을 정확히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본보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예수의 기록이 전해지는 책들 중에는 타시투스Tacitus(AD 55~120)라는 로마의 역사가가 쓴 책에서 짤막히 예수라는 인물이 십자가 처형에 처해졌다는 단편적인 사실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예수의 처형이 있은 후 약 80년 정도 지난 AD 112 년 경에 기록된 것이다. 이미 예수 신화가 로마에도 널리 보급된 후의 일이므로, 그가 시중의 기독교도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었을 확률이 매우 크다. 더구나 동시대 다른 역사가들은 Tacitus를 기독교도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 하나 AD93년에 출간된 죠세푸스(AD37년 출생)의 "유태인 연대기" (Jewish Antiquities)에도 예수에 대해 언급한 구절이 두 군데("증언" 구절과 "형제"구절) 있으나, 학자들간의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거의 모든 학자들이 부분적이건 전체적이건 위조가 있었다는 사실에는 동의하고 있으며, 신화파에서는 전체가 다 위조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1. 먼저 께름직 한 것은 "연대기"의 복사 본들이 전부 기독교인들의 관리 하에 전수 되었다는 것이다.

     

    2. 초대 교부들과 기독교 변증가들은 왜 "조세푸스"의 저술을 인용하지 않았는가? 초대 기독도들은 그들의 교리에 대하여 각 종파로 부터 많은 도전을 받았다. 예수의 실존과 그의 놀라운 기적들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받았고, 이러한 과정은 본인들의 저술에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이 좋은 증거물을 제시하지 않았다.

     

    "증언"구절은 324 년이 되어서야 "유세비우스" 추기경에 의해 처음으로 인용되었다. "형제"구절은 그전에 "오리겐"에 의해 230-250년 사이에 와서야 처음으로 인용되었다. 연대기가 발간된 게 93년경이니까 거의 140-250년이 흐른 셈이다. 그 사이에 기독교 변증가들은 연대기를 읽지 않았을까? 연대기는 초대 기독교도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그들은 열광적으로 그 책을 읽었고 소중히 여겼다. 그런데도, 무수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인용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읽었던 사본에는 문제의 구절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백년이 넘도록, "조세푸스"의 저술을 잘알고 있던 초대 교부들은 상기의 증언 귀절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에 동 구절이 "조세푸스"의 저술에 있었다면 그들은 도전자들과의 논쟁에서 그것을 재빨리 인용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동 구절은 그 저술에 없었다. "조세푸스"의 책을 읽어 본 "오리겐"도 "조세푸스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고 서술했을 뿐이다. 동 구절은 기독교 최초 역사가 "유세비우스" 추기경에 의해 언급되었다. 동 구절은 그의 조작으로 사료된다. "유세비우스"는 신앙의 명분 아래 문서 변조를 지원하였고 "조세푸스"외의 여러 저술가들의 책들도 변조 시켰다" - 마샬 거빈 (Marshall J. Gauvin).

    3. "오리겐"은 "형제"구절은 읽었는데 "증언"구절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 따라서 "증언" 구절은 그 후에 첨가되었다고 보여진다.

     

    4. "조세푸스"의 책 "유태인 전쟁"은 "안티오쿠스"의 예루살렘 점령부터 AD 70 년의 예루살렘 함락까지의 내용을 "유태인 연대기" 책에서 그대로 복사하고 있다. "빌라도"가 군중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 등 다른 부분들은 거의 동일하게 서술되었는데 "유태인 전쟁"에서는 유독 상기의 예수 인용구들만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5. "유세비우스" 추기경이 처음으로 인용한 "증언"은 "조셉 웰레스"에 의하면 본인 스스로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조셉 웰레스"는 많은 연구 끝에 당시 교부들 사이에 유행하던 문서 변조의 행태를 캐어 낸 인물이다. 그는 문서 변조의 대표자로 "유세비우스" 추기경을 꼽았다.

     

    유세비우스 본인의 말을 들어 보자.

    "우리의 구세주에 관하여, 내가 이미 생산(?) 해낸 이 증거들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유태인 "조세푸스"를 여분의 증인으로 이용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 (Eusebius, Evamgelical Demonstration, Book III. p.124)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솔직한 고백인 셈이다. 이래서 "조셉 윌레스"는, 기독교의 문서변조를 증명하기가 "예상 밖으로 쉬웠다"고 하였다. "문서변조의 증거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교부들 자신의 서술과 구교의 교회사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는 것이었다.[ 인터넷 <예수를 찾아서>중에서 ]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가 실존인물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역사기록은 없으며, 기독교인들이 내세우는 타시투스, 수에토니우스, 플리니, 탈루스 조세푸스 등의 기록들은 예수의 실존을 증명하는 사실의 기록이라고 보기 어렵거나 위조된 것이라고 의심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왜 그렇게 기록이 없는 걸까? 그의 일생 중 13세 이후 31세까지의 공백기도 설명이 어렵다. 신약에 보이듯 그의 생전 그렇게 많은 추종자들과 적들이 있었고 사후에도 동시대의 동향인들(심지어 부모까지)이 그렇게 많이 살아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개인에 대한 관심이 그토록 없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들은 핍박 때문에 예수라는 이름을 기록할 수 없었던 것일까? 로마인들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신학자를 포함)은 사상이나 종교에 매우 관대했던 로마의 법률 등을 고려하면 그 시대, 그 곳에서 기록도 못할 정도의 핍박은 없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더 비중을 둔다.

     

    기독교인들은 단군을 신화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보다 무려 2,000 뒤에 탄생하고서도 학자들 사이에서 신화로 간주될 정도면 정말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 아닌가?

사해문서의 숨은 뜻 예수보다 1백년 앞선 구세주?

     

    고대 문서에 적혀있는 많은 내용이 해독됐다고 해서 모든 비밀이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해독을 정확히 하고 과학적인 조사를 완벽히 했기 때문에 수수께끼가 더욱 깊어진 예가 있다. ‘사해사본’(死海寫本)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고대 사본은 1947년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사해 근처 쿰란의 동굴에서 발견됐다. 이 사본이 유태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의 고문서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 종교의 창시자는 ‘이스라엘의 구세주’ ‘정의의 교사’ ‘이사야의 고뇌에 찬 종’ ‘하나님의 아들’ 등의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괴로운 죽음을 맞을 운명에 처했다. 그는 고문을 받았으며 흉악한 제사장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힌다. 그러나 그는 다시 부활해 세계를 구원하고 최후의 심판을 기다린다. 그는 인내와 인간성과 형제애, 자선과 빈곤을 가르치며 새로운 계율과 정의와 세례, 그리고 성찬(聖餐)을 만든다.

     

    동굴에서 발견된 비밀사본 '사해사본'이 발견된 사해 그처 쿰란의 동굴.

     

    이 사람이 누구냐고 퀴즈에 낸다면 거의 모두 ‘예수’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사해사본’에 적혀 있는 이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록돼 있지 않다. 오직 ‘구세주’라고만 표기돼 있으며, 천국을 만들기 위해 최후 심판의 날까지 고민하는 사람을 구원해주는 인물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 사람을 예수라고 단정한다면 간단한 일이지만 문제는 이 구세주가 예수보다 1백50년 전에 살았다고 추정된다는 점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크리스찬이 믿는 예수는 오직 단 한사람의 인물이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가르침은 이미 그 이전에 다른 사람에 의해 설교된 것을 예수가 되풀이한 것이 아닐까. ..........

     

    동굴에서 종교 생활을 하던 에세네파는 바리새파나 사두개파와 마찬가지로 유태교의 한 갈래였다. 이 무리는 구세주 또는 정의의 사도라고 불리는 사람이 이끌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율법과 제사와 같은 형식과 권위에 치우친데 비해, 신비주의와 금욕 생활을 내세워 유대 율법서를 지키고자 했다.

     

    이들은 재산과 예배, 독서와 식사를 모두 함께 했다. 초기 기독교의 형태가 불교에서 스님들이 머리를 깎고 수도에만 정진하던 것과 비슷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에세네파의 생활이 그랬다. 대부분이 남자인 신도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세상의 종말에 대비해 하나님을 믿고 기도했으며, 윤리와 종교적 순수성을 중시하는 엄격한 삶을 살았다.

     

    이들은 최후 심판의 날이 오면 빛의 아들들이 어둠의 아들들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다고 믿었다. 흰색 복장에서부터 종교의식에 따른 식사에 이르기까지, 기도에서 두루마리의 제작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모든 일상사는 다가올 최후의 결전에 맞추어졌다. 영광스러운 새 시대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에세네파 교인들은 2백년 동안 금욕, 기도, 하나님의 말씀 전달과 읽기만을 계속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기다리던 세상은 끝내 오지 않았다. 서기 68년이 되자 이들은 ‘어둠의 아들들’이 아닌 로마군과 맞서 싸워야 했다. 사해동굴의 문서들은 이때 로마인들의 약탈을 피해 동굴 속에 감춰진 것이다.

     

    ‘사해사본’ 중 완전한 것을 정리하니 6권으로 추려졌다. 사해의 두루마기에는 ‘에스더서’를 뺀 구약성서가 모두 들어있었다. 메시아의 서, 하박국의 주석서(註釋書), 계율의 지도서, 라메크의 묵시록, 빛의 아들과 어둠의 아들과의 전쟁 등도 수록돼 있었다. 이 사본들은 제목만 알려졌고 실물은 사라졌던 것이다.

     

    사본들이 쓰여진 연대가 문제가 되자 여러 고대 문헌을 통해 연대를 추정하는 한편 사본의 재료인 양피지에 대한 화학 분석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대략 기원전 400-500년 사이에 책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사용된 언어는 기원전 100년에 사용된 것이었다.

     

    여기서 대담한 가설을 제시할 수 있다. 유태교의 한 분파인 에세네교는 원시 그리스도교의 전신으로 기원 전후에 상당히 많은 신자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 또는 정의의 사도로 알려진 에세네교의 교주와 거의 같은 방법으로 사망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에세네교의 교리가 접목됐다. 그리스도교가 예수라는 인물 한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몇년 간 활동으로 성립됐다기 보다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에세네교의 교리를 예수 그리스도교가 받아들이면서 급속도로 성장한 것이 아닐까. [ 1998년 8월 <과학동아>  이종호/동아일보 조사연구팀 ] ※출처: http://xbible.com.ne.kr


    [注1] 이 외에도 많다.  +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도 있다.[누가9:27]    +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없어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누가21:32~33]     + 분명히 말해둔다. 이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이 이 세대에 내리고야 말 것이다. [마태 23:36]  

출처 : 맑고 밝은 세상
글쓴이 : 늘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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